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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현은] 빈 들에서

조회 수 1556 추천 수 53 2003.08.18 11:51:41
빈 들에서


산을 밟고도 보이지 않는
그리움의 키만큼 더욱 멀어져 간
아득한 목마름

시월 찬 바람에 벌어진
시린 틈 사이로
저 밭에 홀로 맺히던
수수빛 눈물
아직은 울지 않게 하소서
고개 숙인 채

빈 들에 남겨진 허수아비처럼
지킬 것도 없는 하루를 위해
먼 하늘가에 눈을 맞추고
하릴없이 코끝이 아리웁도록
괜스레 종일 서러운 날엔
까닭 모를 눈물, 눈물입니다.

돌아올 날없이
앞으로만 가야 하는
우리들의 길 위엔
그래서 멀어지는 것들로 가득합니다

한 걸음 멀리서 바라보라고
희미해지는 눈 언저리에
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살아나는
눈빛 . 눈빛들

올 때처럼 갈 때도
빈 손이어야 하듯
우리의 가슴에 담아둔 생각마저도
어디로든 불어가야만 하는 바람입니다

하지만 이것만은 허락하소서
누구의 가슴에든
지워지지 않을 싸리꽃 향내로
물들 수 있도록

이것은 아무 것도 아닌 우리가
눈물을 먹고라도
살아갈 만한
이유이기 때문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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